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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philosophy of language

<On sense and reference>, Frege

by jysden 2019. 10. 1.

 동일성Equality 결코 쉽게 답할  없는 어려운 문제를 야기한다. 관계란 무엇인가? 대상들의 관계란 무엇인가? 이름 또는 대상의 기호들의 관계란 무엇인가? 프레게는 자신의 <개념-기호> 안에서, 동일성을 대상의 이름들 간의 관계라고 가정했다. 왜냐하면, a=a a=b 분명히 다른 인식적 가치에 대한 진술이기 때문이다.

 a=a 칸트에 따르면 선험적으로 성립하고, 분석적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a=b 종종 매우 귀중한 우리 지식의 확장을 포함하고 항상 선험적으로 성립할  없다. 오늘날 조차도 작은 행성 또는 혜성에 대한 동일성identification 항상 당연한 문제가 아니다. 이제 만약 우리가 동일성을 이름 ‘a’ 이름 ‘b’ 지칭하는  간의 관계라고 간주한다면, a=b a=a  , a=b (대상 간에 관계가 같다) 참이라면  동일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때문에, 관계란 하나의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표현되어질 것이고, 실로 각각의 대상은  자신에 대하여 있는(stand) 관계이지, 어떤 다른 것에 관해서 있는 관계는 아니다. a=b 의해 의도되고 있는 것은 기호 또는 이름 ‘a’ ‘b’ 동일한 것을 지칭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기호 자체에 대해 논의하게  것이다; 기호들 간의 관계는 확고하게 주장될 것이다. 

 그러나  관계는 이름 또는 기호가 어떤 것을 명명하거나 지칭하는 한에서만,  이름 또는 기호 간에 성립할 것이다.  관계는 각각의  기호들과 동일한 지칭된 대상들 간의 연결에 의해 매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임의적이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우연성이 포함될  있다.) 누구나 어떤 임의적으로 만들어질  있는 사건 또는 대상을 어떤 것에 대한 기호로서 사용할  있다. 이러한 경우에, 문장 a=b  이상 주제를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그것이 대상을 지칭하는 방식만을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언어에 의해 세계에 대한 이야기(proper knowledge)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것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기호 ‘a’ 기호 ‘b’, 기호가 아닌 단지 대상으로서 구분된다면, a=a 인식적 가치는 a=b 인식적 가치와, 만약 a=b 참이라면,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된다. (언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기호들 간의  차이 지칭되는 대상들의 제시하는 방식에서의 차이 대응하는 경우에만, 발생할  있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표현 ‘a,b 교점 ‘b,c 교점 지시체는 같다 - ( 선의 중점). 따라서 우리는, 같은 점에 대하여, 다른 지칭을 갖는다. 그리고  이름(표현)들은 마찬가지로 제시의 방식(대상의 주어짐의 방식) the mode of presentation’ 의미한다. 따라서  진술은 실제적인 지식을 포함한다. 이제 기호”(이름, 단어들의 결합, 문자), “기호의 지시체” (기호가 지칭하는 ), “기호의 의미” ( 안에 제시의 방식이 포함된다) 연관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따라서, 우리의 예에서, 표현 ‘a b 교점 표현 ‘b c 교점 동일한 것을 지칭하지만, 다른 의미를 갖는다. ( 지시의 방식이 다르다.)  다른 예를 살펴보자.

 ‘샛별 지시체는 개밥바라기 지시체와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따라서 프레게가 기호 이름 의해 어떤 고유 명사를 표상하는 (고유 명사인) 지칭을 이해했던 것은 분명하다. 고유 명사를 표상하는 지칭은 기호 또는 이름 지시체로서 어떤 특정한 대상을 갖지만, 어떤 개념 또는 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단일의 대상에 대한 지칭designation 다른 기호들 또는  개의 단어들로 구성될  있다. 간략히 하자면, 모든 그러한 지칭은 고유 명사라고 부르자. 고유 명사의 의미는 모두에게 이해될  있다. 이들은 충분히 고유 명사가 속하는 지칭들의 총체와 직접 대면acquaintance  있다. 그러나 고유 명사의 의미는, 고유 명사가 지시체를 갖는다고 가정하면서, 오로지 고유 명사의 단일한 측면만을 조명하게 해준다.  지시체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즉시 어떤 주어진 의미가 지시체에 속하는지를 말할  있게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러한 지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기호, 그것의 의미, 지시체 간의 정상적인regular 연결은 하나의 특정한 의미가 그것의 기호에 대응하고, 다음으로 하나의 특정한 지시체가 그것(기호) 대응하는 종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지시체에 유일한 하나의 단일 기호만이 속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의미는 다른 언어 또는 심지어 같은 언어에서 조차도 다른 표현들을 가진다. 분명히,  정상적인 양상behaviour에도 예외는 있다. 하나의 특정한 의미는 기호의 완전한 총체에 속하는 모든 표현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 언어는 종종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는 만약 동일한 단어가 같은 문맥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만족해야만 한다. (자연 언어 안에서  언어가 여러 의미를 가질  있는데, 우리는  문맥에서 같은 단어가 같은 의미를 갖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고유 명사이면서 문법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표현이 항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인정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지시체가 하나의 의미에 대해 대응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천체 의미를 갖지만, 프레게는  단어들 역시도 지시체를 갖지 않을 거라고 의심한다. 표현 가장 느리게 수렴하는 수열 의미를 갖지만, 증명 가능하게 지시체를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주어진 수렴하는 수열 대해서,  다른  느리게 수렴하는 수열이 발견될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이해할 , 우리는 지시체에 대해서 분명하게 확신할  없다.

 만약 단어들이 일상적인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들의 지시체이다. 하지만, 우리가 단어 자체 또는 그것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경우 역시 발생할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다른 사람의 단어를 인용할  발생한다. 우리가 가진 단어들은 먼저 다른 화자의 단어를 지칭하고, 다른 화자의 말은 그것의 일상적인 지시체를 가질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기호의 기호를 가진다. 글을  , 바로  단어들은  경우에 인용구 표시에 둘러 쌓인다. 따라서, 인용구 표시 사이에 있는 단어는  단어의 일상적인 지시체를 가지는 것으로서 여겨지지 말아야만 한다.

인용구’ -(지칭)-> 다른 화자의 단어 - (지칭) -> 일상적 지시체

 표현 ‘A’ 의미를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표현 “A” 대한 의미라는 구를 사용할  있을 뿐이다. 뉴스를 보도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할 ,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말하기 방식에서, 단어들이 그것들의 일상적인 지시체를 갖지 않고, 의미하는 것을 지칭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간략히 말하자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보도를  , 단어들은 간접적으로 사용되거나간접적인 지시체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는 단어의 일상적인 지시체와 간접적인 지시체를 구분하고, 일상적인 의미와 간접적인 의미를 구분한다단어의 간접적인 지시체는 따라서 그것의 일상적인 의미이다. 만약 기호, 의미, 지시체 간의 연결 방식이, 개별 경우에, 올바르게 이해된다면, 이러한 예외는 항상 염두되어야 한다.

 기호의 지시체와 의미는 그것의 연관된 아이디어와 구별된다. 만약 기호의 지시체가 의미에 의해 지각 가능한 대상이라면, 나의 관념idea (내가 가진 감각 인상의 기억으로부터 발생한) 내적 심상이다. 그러한 관념은 종종 감정feeling으로 채워진다. 관념의 각각의 부분들의 명료성clarity 다양하다. 동일한 의미는, 심지어 동일한 사람에게서 조차도, 항상 동일한 관념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념은 주관적이다. 사람들 간의 관념도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로  동일한 의미와 관련된 관념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다. 화가,  조련사, 동물학자는 아마도 이름 ‘Bucepgalus’ 대하여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관념과 기호의 의미 간에 중요한 구분인데, 관념은  사람 혼자만이 가지고 있을  있는데 반하여, 의미는 다수가 공유 가능한 속성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의 인류가  세대로부터 다른 세대에게 전달한 공통된 사유(의미) 자산을 거부할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고려해볼 , 우리는 하나의 의미 the sense만을 말할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반면에, 하나의 관념의 경우에, 우리는, 엄격히 말하자면,  관념이 누구에게 속하는지, 언제 속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만 한다. 이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해질  있다: 우리가 같은 단어를 가지고  관념과 다른 관념을 연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의미와 다른 의미를 연관시킬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연결의 방식에 차이가 남아있다. 위에서 열거한 화가, 동물 조련사, 동물학자들은 동일한 의미를 이해하는  방해받지 않지만, 동일한 관념을 가질 수는 없다. 만약  사람이 같은 것을 그린다면,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관념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관념의, 또는 감각작용sensation 차이를 만드는 것은 종종 가능하다. 그러나 정확한 비교는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의식 안에서 결코  개의 관념을 가질  없기 때문이다.

 ​고유 명사의 지시체는 우리가 지칭하는 대상 자체이다.  경우에 우리가 가진 관념은 전적으로 주관적이다.  관념들 간의 의미는  이상 관념과 같이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미는 아직 대상 자체는 아니다. 다음의 비유는 아마도  관계를 명확하게 해줄 것이다.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고 있다. 나는  자체와 달의 지시체를 비교한다. 달의 지시체는 망원경의 대물 렌즈에 의해 투영된 실제 상에 의해, 그리고 관찰자의 망막에 맺힌 상에 의해, 매개되어 관찰된 대상이다. 전자는 의미이고, 후자는 관념 또는 경험이다. 망원경 내의 시각적 (관념) 실로 하나의 측면만을 가졌고 관찰자의 관점에 의존적이다. 그러나 다수의 관찰자에 의해 사용되어지고 있는 , 이것은 여전히 객관적이다. 어쨌든, 이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될  있게 처리될  있다. 그러나 저마다의 사람은 각자 자신의 망막에 맺힌 상을 가질 것이다. 관찰자 시각에서 , 다양한 모양을 고려하자면, 기하학적 합동 역시 달성될  없고, 실제적인 일치도 불가능할 것이다.  비유는 A 망막에 맺힌 상이 B에게 보여질  있다고, 또는 A  자신의 망막에 맺힌 상을 거울로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발전될  있다. 이러한 방식에서 우리는 아마도 관념이  자체로 대상으로 간주되는 방법을 보여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관찰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관념을 가진 사람에 대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를 논의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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