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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Metaphysics

직설법적 조건문은 실질 조건문인가?

by jysden 2020. 7. 1.

* 일러두기: 이번 글에서 나는 직설법적 조건문에 대한 약간의 논의를 간략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나는 편의상 '직설법적 조건문'을 그냥 '조건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건문은 직설법적 조건문과 반사실적 조건문(가정법적 조건문)으로 구분되어질 수 있다. 전자는 가령 " 만약 내가 사법 시험에 합격한다면, 나는 변호사가 될 것이다"와 같이, 전건이 참인 경우에, 후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인식적인 문제를 포함한다. 반면에, 후자는 가령 "만약 내가 사법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나는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다"와 같이, 전건이 사실에 반하는 경우에 있었을 법한 사건에 대한 문장이고, 그래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지닌 조건문이다. 에징턴에 따르면, 조건문을 이해한다는 것은 (1) 그 문장이 참이 되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2) 그것의 구성 요소 문장을 이해하는 것, 그러니까 그 요소 문장이 전체 조건문의 진리 조건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직설법적 조건문이 단순한 내용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조건문은 다음의 램지 테스트 형태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내 믿음 체계에 전건을 추가하고, 뒤이어 후건을 추가할 때, 이들은 양립가능한가, 아니면 그렇지 않는가. 우리가 조건문을 구성하고 있는 두 개의 구성 요소 문장(전건, 후건)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면, 그리고 위 같이 조건문이 어떤 함축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조건문에 대해 할 말이 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함축 관계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조건문에 대한 쟁점은 여기에 있다.

 

  그 쟁점은 이것이다: 조건문은 진리함수적인가 아니면 비진리함수적인가? 누군가에게는 이 물음 자체가 낯설 것 같다. 이것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문장 A를 "민수는 서울에 있다" 라고 하고, 문장 B를 "철수는 부산에 있다"라고 해보자.

 

(1a) A는 사실이 아니다 (참이 아니다)

(2a) A와 B, A 또는 B

 

(1b) A인 것은 가능하다

(2b) B가 일어나기 이전에 A가 일어났다, B가 일어났기 때문에 A가 일어났다

 

(1a), (2a)는 진리 함수적인 문장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문장 A와, &, v, ⊃, ~ 등의 연산자를 가지고 표현되어질 수 있고, 어떤 가능한 상황에서도 이 문장의 진리치는 고정된다. 반면에, (1b), (2b)는 진리 함수적인 문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위의 것들만을 가지고서) 표준 양화 명제 논리 안에서 표현되어질 수 없고,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문장들이 바로 그 문장 (1b), (2b)의 진리치를 결정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조건문으로 돌아와보자. 기원전 4 세기 Philo of Megara 이후에 종종 Philonian 조건문이라 불린 적이 있는 이 직설법적 조건문은  현대에 와서 프레게, 러셀, 비트겐슈타인, 논리 실증주의자에 의해 이전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연구 중에 "If A, then B" 조건문의 진리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유명한 입장은 직설법적 조건문은 실질 조건문 Material Conditionals과 동치라는 것이다. 즉, A→B if and only if  A ⊃ B. 잘 알려져 있듯이, 실질 조건문  A ⊃ B은 ~(A & ~B)와 동치이고, 이것에 드모르간 법칙을 적용하면 ~A v B 가 되기 때문에, A ⊃ B ≡ ~(A & ~B) ≡ ~A v B 라고 여겨진다.

 

 

  프랭크 잭슨, 그라이스 같은 학자들은 조건문  A→B와 A ⊃ B를 동치라고 본다. 이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가) “A→B이 A ⊃ B을 함축한다”는 것과, (나) “A ⊃ B이 A→B을 함축한다”는 것을 둘다 보여야 한다. 하지만 (가)는 그럼직 해보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에징턴은 (나) 조차도 받아들일 만하다고 말한다. 다음의 예문을 보자.

 

  ① A v B는 ~A → B를 함축한다

  ② ~(A & B)는 A → ~B를 함축한다

 

  먼저, ①에서  A, B 둘 중 어느 하나가 참인지 여부를 안다면, 우리는 다른 나머지 문장의 참도 알 수 있는데, 그러면 가령 A가 참이 아닐 때, B가 참일 것이고, 이때 바로 이 문장은 ~A → B 를 나타낸다.  ② 역시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이에 더하여, 간략한 형식적 증명을 통해 ②가 타당하다는 것을 보이겠다. 귀류법으로 증명해보자. 

 

가정1. ~(A & B)

가정2. A

가정3. B

       4. ~B by 가정1, 가정2.

   ∴  5. A → ~B by 가정2, 4, 조건문 도입

 

  혹자는 “A ⊃ B이 A→B을 함축하지 않는다” (즉,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래 표는 (나)를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보여준다.

 

     A v B ~A→B

1.      T       T

2.     T        F

 

 

[(나) 옹호]

 

  위 표의 1 행을 보라. A v B가 참일 때, A, B 중 ~A라면, A v B가 참이 되기 위해, B는 항상 참이어야 한다. 그러면, ~A→B는 참이다. 하지만 그러면 2 행은 자연스럽게 거짓이 된다. 우리의 건전한 직관에 따른다면, 거의 모든 경우에 1 행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A v B가 ~A→B (=~A⊃B)를 함축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은, ~A v B가 A→B (=A ⊃ B)를 함축한다는 것을 보인 것과 다름없다. 더 그럴듯한 예를 사용하기 위해, 혹은 부정이 배치된 조건문에 대해 말하기 위해, 에징턴이 위 예를 사용한 것 같다.) 

 

 

[ (나) 옹호 경우에 나타나는 곤경]

 

  하지만 1 행을 받아들일 때 조차도 뜻하지 않은 곤경이 나타난다. “철수가 사과를 먹지 않았다”가 참이라고 해보자. 이것은 “만약 철수가 사과를 먹었다면, 그는 아팠을 것이다”가 참이라는 것에 대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즉, ~A가 ~(A & ~B) [ = A ⊃ B] 를 함축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A ⊃ B가 A→B를 함축한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말할 때, 우리는 ~A는 A→B를 함축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즉, 이 가능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나)를 옹호하기 어렵다. 

  우리는 ~A를 100% 확신할 때, A에 대한 전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A가 A→B를 함축한다” 같은 귀결을 제공하는 어떤 이론이 있다면, 우리는 그 귀결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A에서 A→B로의 추론의 수용불가능성은 (확신의 정도가 낮은) 믿음 문맥에서 나타난다. 나는 확실성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를 생각한다”, “-를 믿는다” 를 사용할 것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어떤 명제 P를 믿는다는 것을 B(P)라고 표현하고, 어떤 다른 명제 C를 믿는다는 것을 B(C)라고 하고, 이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B(C)라고 표현해보자. 그리고 P에서 C로의 어떤 타당한 논증이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만약 내가 B(P) & ~B(C) 상태이고, P에서 C로의 어떤 타당한 논증이 있다면, 나의 믿음은 비합리적일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p:  평면인 나의 스마트폰 모형은 사각형이다

  c: 평면인 나의 스마트폰 모형의 테두리는 4 개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 예문을 참고할 때, 철수가 B(p) & ~B(c) 한 믿음 상태를 갖고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c가 참이지 않고서 p가 참일 수는 없다. 사각형은 분명 다름 아닌 바로 4 개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수는 비합리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옹호할 때 이 같이 뜻하지 않은 곤경이 나타난다는 것을 시사한다.

  위 맥락에 이어서 말할 때, 우리는 가령 ~H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100% 확신하지 않을 때, 만약 H 라면, 뒤따라 나오는 것들 중 무엇이 참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이것은 중요할 수 있다. 다음의 두 예문을 보자. 

 

  (H1) 나의 남편은 집에 있지 않다. // ~H

  (H2) 만약 나의 남편이 집에 있다면, 그는 내가 어디있는지 걱정할 것이다. // H → W

 

  (Q1) 여왕 님께서 집에 계시지 않는다 // ~Q

  (Q2) 만약 여왕 님께서 집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녀는 내가 어디있는지 걱정할 것이다 // Q → W

 

비진리함수적 설명에서, (H) 예문은 온당한 추론인 것 같다. 따라서 이것은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나) 입장에 대한 좋은 예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Q) 예문은 비진리함수적 설명에서 볼 때 온당치 못하다. 이 가능성은 물론 여왕과 내가 친한 경우에 가능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고,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것은 (나) 입장에 반론을 제기할 때 사용될 수 있는 좋은 예인 것 같다. 더욱이, (나) 입장을 옹호한다면, 그래서 진리함수적 설명에서, (H) 예문과 (Q) 예문 간의 화용론적 차이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입장이 심각한 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믿음의 정도에 수치를 부여하여 이 난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우리는 어떤 명제의 믿음에 수치적인 정도를 부여할 수 있다. 가령, 우리가 어떤 명제 X를 확신하듯이 믿는다고 할 때, “명제 X를 90% 만큼 믿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을 $B_{90}$(X) 라고 표현하자. 그러면 우리는, (나) 입장에 따를 때, $B_{90}$(~X) 이면,   $B_{90}$(~X v Y)를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B(~X) & ~B(X ⊃ Y)인 믿음 상태를 갖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왜냐하면 ~B(X ⊃ Y)는 B(X & ~Y)이기 때문이다. [(~X v Y) ≡ ~( X & ~Y) ≡ (X ⊃ Y)임을 기억하자.] 하지만 그렇다면 모순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그는 B(~X) & B(X & ~Y)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B(~X & X & ~Y) 믿음을 갖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B( ⊥ & ~Y) 같이 모순적인 믿음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믿음 문맥에서 (나) 옹호자가 마주할 곤경인 것 같다.

 

 

 

 

Reference

 

Edgington, Dorothy. "On conditionals." Mind 104.414 (1995): 235-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