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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philosophy of language

프랑스의 현재 왕은 대머리이다 (기술구 이론에 대한 단상)

by jysden 2020. 2. 11.

 

문장 “프랑스의 현재 왕은 대머리다”는 러셀의 한정 기술구 이론을 설명할 때 항상 등장하는 예이다. 러셀은 왜 이런 문장을 다루고 있는가?  러셀은 자신의 기술구 이론이 특정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기술구가 포함된 문장이 자연 언어에서 인공 언어로 분석될 때, 그 기술구가 지칭하는 대상이 (1)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2) 2 개 이상인 경우에, 러셀의 그 바램을 방해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 중 (1)에 해당하는 물음인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골라내는 것처럼 보이는 한정 기술구를 이해할 수 있는가”에 러셀이 답하기 위해 제시한 한 예가 바로 이 문장 “프랑스의 현재 왕은 대머리다”이다.

 

이 물음에 대한 러셀의 답을 알아 보기에 앞서, 이 물음에 대한 가능한 답들 중 하나인 마이농주의적 해결방안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마이농과 일부 학자들은 대상을 - 존재하는 대상과 존재하지 않는 대상으로 구분하고, 존재하는 대상을 다시 — 시공간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 “존재하다exist”와 — 시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 “상재하다subsist”로 구분한다. 가령, 단어 ‘페가수스’ 는 시공간 안에 존재하지 않지만, 구phrase에 의해 지칭되고,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특정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이 진정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슈왈츠는 그의 책에서 이러한 방식의 해결책을 받아들인다면, (A) 그런 상재하는 존재자는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오캄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B) 그런 상재하는 존재에 대한 동일성, 또는 개별화 기준이 적절히 제시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방안 갖는 곤경에 대해 지적한다. 나는 우리는 과연 이러한 신비스러운 존재자를 끌어들이는 상재하는 대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진심으로 의심스럽다. 나 역시 슈왈츠의 지적에 대해, 직관적으로는 (A)에, 논리적으로는 (B)에 동의한다.

 

이제 러셀 자신이 제시한 위 물음에 대한 답변을 알아보자. 러셀은 아래의 자연 언어로 표현된 문장은 사실 잘못된 문장이라고 지적한다.

 

(F) 프랑스의 현재 왕은 대머리이다. The present king of France is bald

 

러셀은 (F) 문장은 사실 다음의 3 가지 문장들을 함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아래의 이 분석된 재구성 문장들의 열거가 시사하는 바는 기술구가 나타나는 문장 (F)를 기술구가 나타나지 않는 문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즉 분석 가능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러셀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이 기술구 ‘프랑스의 현재 왕’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F’) 

    

      ① 현재 프랑스의 왕이 (최소한 하나) 존재한다 (∃x)(Kx) // (존재문장). 아직 그 수가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하나 이상의 수에 대한 제한이 없다. 

      ②프랑스의 왕은 하나 보다 많지 않다 (∀ y)(Ky⊃(x=y)) // (유일성 전제) 정확히 그 수가 딱 하나만 존재한다는 의미

      ③ 그러한 사람은 대머리이다. // 그러한 x에 대하여, Bx를 만족하는 x가 존재한다.

 

      ④ 종합: 현재 프랑스 왕은 정확히 단 한 명만 존재하고, 그 사람은 대머리이다.

      ⑤ 인공 언어로 번역: (∃x)(Kx & (∀ y)(Ky⊃(x=y)) & Bx)

 

이제 (F’)에서 분석된 문장 ⑤는 문장 (F)에 있는 한정 기술구가 지시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 복잡한 형태의 술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문장 (F)의 유의미성은, 기술구의 지시함 성립 여부가 아니라, 술어로 표현된 조건 ①-③을 만족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즉, 이것의 진리값은 ① (∃x)(Kx),  ② (∀ y)(Ky⊃(x=y)), ③ 그러한 x에 대하여, Bx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하지만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x가 없기 때문에 러셀은 문장 (F) 거짓이라고 간주한다

 

 

  * 러셀은 한정 기술구를 지시적 표현으로 인정 안함.

    * 러셀이 문장 (F)를 거짓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기술구가 지시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분석된 문장 (F’)의 조건 3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x가 존재하지 않기 떄문임.

 

 

하지만 과연 이런 식의 분석은 받아들여질 만한가? 우리는 분명 “현재 프랑스의 왕은 대머리다”라고 말할 때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그것의 참/거짓을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 러셀의 기술구 이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일상언어 학파인 Strawson 기술 이론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스트로슨은 구체적인 일상 대화의 상황에서, 인간에 의해 문장이 어떻게 사용되고 반응되는지를 강조했다. 지시함denoting을 <표현- 그 표현의 지시체> 간의 관계로 간주한 러셀과 다르게, 스트로슨은 지시함refering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시간에 인간에 의해 행해진 활동이라고 간주한다.”  

그의 기술 이론에 따르면, 기술구현재 프랑스의 — 그것을 포함한 문장이 의미를 갖기 위하여, 즉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진리치를 갖기 위하여 — 미리 전제presuppose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트로슨은 여기서 문장 (F)는 거짓이라기 보다, 무언가가 잘못 전제되고 있다는 것 (defective)을 의미하고 있다. 가령, 우리가 문장 (F)를 발화하려면, 현재 프랑스 왕의 존재를 미리 전제해야만 이 문장이 의미를 갖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 문장은 진리치-결여를 갖게 된다; 즉, 문장 (F)는 참도 거짓도 갖지 않는 문장이 된다. 러셀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의 왕의 존재>는 함축entail되고 있는 것인데 반하여, 스트로슨에 따르면 문제의 그 문장이 의미가 있으려면 <현재 프랑스의 왕의 존재>는 미리 전제presuppose되어 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트로슨은 문장 (F)를 발화할 때, 러셀과 같이, ((F) - ①)인 “현재 프랑스의 왕이 존재한다”는 존재 문장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이해를 분명히 해보자.

 

(a) 문장 (F)가 의미가 있으려면, 현재 프랑스 왕 대한 문장이어야 한다.

(b) 만약 현재 프랑스 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문장 (F)는 어떤 것에 대한 문장이 아니다.

(c) 문장 (F)가 어떤 것에 대한 문장이 아니라면, 그 문장은 현재 프랑스 왕에 대한 문장이 아니다.

(d) 문장 (F)가 현재 프랑스 왕에 대한 문장이 아니라면, 그 문장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진리치결여). By (a), 대우

(e) 문장 (F)가 의미가 있으면, 그 문장은 참 또는 거짓의 값을 갖는다.

 

스트로슨이 주장하는 바의 요점은 (a)-(c)로 나아가는 사유 과정으로부터 “X 대한 문장”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X를 미리 전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문장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가 만약 스트로슨의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것도 미리 전제되어질 수 있어 보이고, (가령, 유니콘, 황금산, 둥근사각형 등), 그렇다면, 슈왈츠가 그의 책에서 제시한 마이농주의적 해결책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곤경 중 하나인 (A) - 오캄의 법칙 위배 - 가 동일하게 적용될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미리 전제되는 대상들 간의 동일성 문제도 발생하는 것 같다. “유니콘은 날개달린 말이다”와 “무니콘은 날개달린 말이다”가 둘다 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유니콘’과 ‘무니콘’의 존재를 둘다 미리 전제 했을 때, 실재 여부가 문제시 되고 있는 이 둘의 동일성은 어떻게 이해되는가? ‘유니콘’은 우리 모두가 동화책에서 많이 봐서 그것이 날개달린 말이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참이고, ‘무니콘’은 처음 보는 단어인데 그것의 설명항은 ‘유니콘’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거짓인 것인가? 아니면 ‘무니콘’이 새롭게 규정되고 있다는 의미로 위 문장은 참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이 둘은 동일하다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인가? 스트로슨의 이론 역시 받아들이기 부담스럽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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