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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Metaphysics

기반(grounding)에 대한 가이드 K.Fine

by jysden 2025. 12. 31.

*일러두기: 나는 사실 a를 [a]라고 표기한다. 하지만, 발제자주 abc에 대해서는 [*abc]라고 표기한다.

나는 사실 표기로서 ‘[ ]’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종종 의역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 ]’를 사용한다. 맥락을 고려하며 읽을 때, 이 둘의 혼동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기반의 개념

  파인은 존재론적 기반을 구성적 결정으로 간주한다. 또한,때문에in-virtue-of’ 주장은 대안적으로 ‘왜냐하면because’ 주장 또는 진리확정 진술로 표현되어질 수 있고, 설명항과 피설명항 간의 일종의 양상적 진술 (엄밀 조건문)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때문에’, ‘왜냐하면’에 의해 의미되는signified 연결이 없이도 양상적 연결이 성립할 수 있다. 가령, ‘만약 눈이 내리면, 2+2=4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문장이 그 예이다. 그러나 사실 [2+2=4]는 사실 [눈이 내린다]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때문에 주장은 설명적이거나 결정적 연결도 있다. 나는 ▲ 형이상학적 필연성[*◻︎m 라고 약칭]을 가지고 조건문이 성립하거나, ▲ 전건 사실이 후건 사실에 대한 기반일 때, 이러한 기반 주장을 “때문에 주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1) 형이상학적 필연성은 “때문에 주장”의 가장 완벽한 형태라고 가정하고, (2) 주어진 사실이 성립하는 때문에 주장에 대한 더 엄격/완전한 설명을 요구한다.

 

 ◼︎ 설명항이 피설명항에 대해 구성적이거나, <피설명항의 성립함>이 <설명항 또는 설명항들의 성립함과 다름 없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것이 “피설명항이 설명항이라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피설명항이 비실제적이고, 설명항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반 자체에 대한 주장에 의해 적절히 함축된 모든 것은 피설명항이 성립하는 그 ‘때문에’에 대한 더 엄격/완전한 설명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기반”과 “기반되는 것” 간 틈이 있다면, 그건 설명적 틈이 아니다. (…) 각 이 분야들은 그 자체로 설명적 과업과 연루될 것이고, 단지 설명 또는 설명되어지는 사물의 종류뿐만 아니라, 그들 간에 성립한다고 여겨지는 설명적 관계에 의해서도 구분된다.

 ◼︎ 각 이러한 (위 분야들) 설명적 관계는 단일 일반 관계를 통해 정의되어야 하는가? 

     [A] < [B] iff [일반적 의미에서 A] 때문에 [B] 성립 & ◻︎m(A⊃B). 반면에, (1) (일반적 관계를 통해 특수한 설명적 관계를 이해하기 보다) 우리는 일반적 관계를 일종의 특수 관계들의 선언으로 이해해야 하고, (2) 각 기본적 양상은 그 자신의 설명적 관계와 연루되어야 한다고 생각될 수 있다. Claim: 만약 여기에 일반적 개념이 있다면, 양상과 그것의 상응하는 설명적 관계를 연결해주고, 그 자체로는 설명적 개념의 지위를 갖지 않는 것이다.

 파인은 후자의 견해를 옹호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어진 행동이 옳거나 옳지 않다는) R v ~R을 고려해보자. [R v ~R]은 [R]에 기반한다. [R]이 (옳음은 행복을 극대화한다는) [R’]에 의해 설명되어진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R v ~R]은 [R’]에 의해서 설명되어진다. 그러나, ◻︎(R v ~R)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m(R’ ⊃ R v ~R)이다. 그러나, [R’]이 [R v ~R]을 기반하지는 않는다.

 

기반에 대한 가이드

형이상학적 필연성이 필연성에 대해 더 엄격한 형식이듯이, 형이상학적 기반이 “때문에 주장”의 더 엄격한 형태라고 가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 [* 단지 “필연성”인 것 보다  “형이상학적 필연성”인 것이 더 엄격한 형식이다. 왜냐하면 단지 “필연성”인 것에는 “자연적 필연성”, “논리적 필연성”, “형이상학적 필연성” 등이 여러가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반 역시 단지 “기반”일 뿐인 경우에는 “자연법적인 기반”, “형이상학적 기반” 등 어떠한 것도 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기반” 보다 “형이상학적 기반”이 더 엄격한 형식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다.] 

즉, 우리는 주어진 사실이 성립하는 것 그 ‘때문에’에 대한 더 완전한 또는 엄격한 설명을 요청할 수 있다.

(예1) 입자의 경우에, 우리는 <양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 때문에 <입자가 가속한다는 것>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피설명항이 성립하는 그that ‘때문에’에 대한 더 엄격한 설명에 의해 - 적어도 원리상 - 채워질 수 있는 설명항과 피설명항 사이의 갭 같은 것이 있다

 

 —>[* <어떤 입자가 양의 힘으로 움직인다>면, 그 입자는 힘의 법칙에 따라 <가속할 것>이다. 나는 이것에 동의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나’ 뒤에 있는 문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양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입자가 가속한다는 것>에는 어떤 갭이 있는 것 같다. 

 

 1. 입자가 양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

 2. 1에 의해, 입자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속도가 증가한다.

 3. 2에 의해, 입자가 가속한다.

 즉 여기에는 2 라는 갭이 있었다.]

 

(예2) 그러나 만약 우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자의 속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입자가 가속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피설명항이 성립하는 그 ‘때문에’에 대한 더 완전한 설명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A)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 피설명항에 대한 더 완전한 설명을 얻는다.

—> [* 이 경우에 저자가 말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것은, (예1)에서의 설명항 <양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예2)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자의 속도가 증가한다>로 대치됨으로써, (예1)의 주석에서 열거한 항목 2 사실이 항목 3 사실을 기반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예1)에서 처럼 1 —>3 을 기반할 때처럼 2라는 갭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2가 3을 기반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갭이 없다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유능한 물리학자라면 2와 3 사이에서도 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파인은 마지막 문장 (A)를 남겨둔 것 같다.]

 

 2. 기반의 중요성

 ◼︎ (1) 실재에 대한 문제. 실재론자 [실재란 무엇인가] 또는 반실재론자[비판론자]가 있다. 가령, 시제란 단지 언어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 속에 있는가? 정신, 수 등도 그러한가 등이 문제될 수 있다. (2) 순한naive 또는 전pre-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자: 그들은 사물이 실제적인지에 대한 고려없이 사물의 본성과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공간 속에 물질적 사물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간 속에서도 그것들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물을 수 있다. 또는 우리는 허구적 캐릭터가 정말로 그 저자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여부를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외부 세계의 실재를 순수히 현상적 세계의 실재를 옹호하여 거부할지라도 고려할 수 있는 물음들이다.

 기반에 대한 물음들은 실재론자 철학 (상기의 (1) 입장)에게 더 중심적이다. 실로, 기반에 대한 고려가 폐지된다면, 이 주제에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반실재론자는 설명적 도전에 마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그가 심적인 것의 실재를 부인하고자 한다면, 그는 심적인 것의 외양을 설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실재론자가 반실재론에 맞서서 말하고자 한다면, 이 설명적 도전이 만족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도 역시 실재론자의 의무이다. 

 

 ◼︎ 이 설명적 도전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무마음적 세계를 통해 마음을 가진 세계의 외양을 설명하는 것 또는 순수히 자연주의적 세계를 통해 가치를 가진 세계의 외양을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파인이 가진 답변은 이것이다. 가치, 심적인 것의 실재를 상정하지 않는 사실을 통해 가치value 또는 심적인 것의 실재를 상정하는 모든 사실들을 기반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물리적인 것이 심적인 것을 인과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적인 것에는 물리적인 것의 실재에 덧붙여진 다른 실재를 가질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 가능성]은 물리적인 것을 통해 심적인 것에 대한 분석적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반실재론자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심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을 양상적으로 수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전히 물리적인 것 자체는 결국 심적인 것을 통해 이해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환원

 환원을 이해하는 방식을 우리가 설명할 수 있으려면, 오직 설명 자체의 형이상학적 형태로서 기반의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물 간 틈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형이상학적 필연성의 연결만큼 강한 연결이 필요하고, 만약 우리가 환원이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야 한다는 어떤 일반적 확신도 가져야 한다면, 결정의 형태를 양상적 연결에 부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4 기반의 문법

 문장연산자를 ‘ < ‘ 라고 하자. 이것은 ‘because’ 와 유사한 형태로 사용되지만 둘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 ‘because’는 ‘<‘에 대해 기반의 독특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 단일 선언적 전건과 다수의 비선언적 전건을 구분해주지 못한다. 문장 술어는 ‘◁’라고, 명제적 술어는 ‘◀︎’라고 표기한다.

 이제 “0-기반zero-grounded”과 “비기반ungrounded”를 구분해보자.

 * 0-기반: 0 개의 전건에 기반한다. 이것은 공집합, { }과 유사하다.

 * 비기반: 어떤 진술도 없다. 심지어 0 조차도 없다.

 다른 한편, 소크라테스 같은 원자 요소 urelement는 생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에서 생성된”은 <0개의 대상에서 생성됨>과 <무가 존재함> 사이에서 애매하다. [*내 생각에 위 개념을 직관적으로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다음의 그림인 것 같다.] 

  • ◼︎어떻게 0-기반될 수 있는가?

 어떤 수의 문장에도 적용가능한 연언 연산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A, B …)은 A,B … 연언지에 기반한다고 일반적인 원리로서 말해질 수 있다. 따라서, 연산자 ∧는 0 개의 진술에 적용되는 특수한 경우에, 결과내주는 연언 T = ∧ ( )는 그 0 개의 연언지에 기반한다. (: 0-기반함의 경우는 기괴한 가능성일 수 있다.)

 

3. 기반과 진리확정하기

 기반 개념은 진리확정하기 개념과 가까운 사촌이다. 이들은 무엇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 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어떻게 그것들이 그 현상을 조직하는지에 있어서는 일부의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진리확정하기에 대한 관계는 <사실, 사태와 같은, 세계 내의 어떤 존재자>와, <세계가 존재하는 방법을 표상하는 문장 또는 명제 같은 무언가>를 연관시킨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 의도된 이해는 세계적 존재자에 대한 존재가 존재자를 그 표상해주는 존재자의 참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반은 아마도 (술어에 의해 의미되는) 어떤 관계로서가 아니라, (문장의 어떤 연산자에 의해 의미되는) 어떤 연산자로서 최선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반이 어떤 관계로 간주되는 한, 같은 유형의 존재자 간에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선택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한, 이 존재자들은 아마도 <명제 같은 표상적 존재자>가 아닌 <사실과 같은 세계적 존재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이 빨갛다는 것]과 [공이 둥글다는 것]은 [공이 빨갛고 둥글다는 것]을 참으로 만들지만, [공이 빨갛다]와 [공이 둥글다] 명제 <공이 빨갛고 둥글다>를 참으로 만드는 사실의 존재가 아니다.

 기반의 이론에 대한 관점에서, 진리 확정자 이론은 기반되는 것에 대한 다루기 힘든 제약된 개념을 갖는다. 물론 우리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표상에 대한 참 또는 옳음에 대한 기반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이 경우에, 흥미를 가질 것은 아마도 순전히 표상의 한 모임에 대한 참이 아니라, 모든 표상에 대한 모임이다. - 그것들은 언어적, 심적, 또는 추상적) 그러나 이들은 결코 단지 발생할 것인 “확정하기” 또는 기반에 대한 물음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P인 표상을 참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물음을 고려할 때마다, P를 참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물음도 발생할 것이다. 실로 표상에 대한 물음은 항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는 <P를 P인 표상이 P를 표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반에 관한 것>과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것으로서 표상과 관련이 없지만, P에 대한 기반에 대한 것>

 기반 이론의 관점에서, 진리 확정자 이론도 기반하는 것에 대한 그것의 개념에서 다루기 힘든 제약이 있다. 왜냐하면 진리확정자는 기반은 존재적 귀속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존재적 귀속의 형태]는 항상 표상의 참에 대해 적절히 설명하는 무언가에 대한 존재이다. 그러나 왜 참인 것에 대한 궁극적 원천이 항상 존재하는 것에 놓여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는 없다. 아마도 이것은 관계적인 무언가에 있을 수 있다. 관계 R에서 b에 대해 있는 a, 또는 관계적인 무언가의 부정, 관계 R에서 b에 대해 있지 않은 a, 또는 어떤 다른 형태에 대한 무언가.

 실로, 기반에 대한 존재론적 견해는 다소 그 자체로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P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P (가령 비가 내린다) 때문이라고 (그 반대가 아니라) 가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왜 진리확정자 이론가가 그런 그럼직하지 않은 견해를 진리 확정하기에 대한 그들의 개념에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가능한 이유는 - 그 이론가들은 기반이 세계 내에 있고, 참이 기반된 것이 표상의 측면에 놓인 것을 보여주듯이, 존재도 기반하는 것이 세계의 측명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무언가를 원한다 - 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무엇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관계항의 형식에 대해 중립적으로 남아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더 선호될 것이다.

 기반해주는 것과 기반되는 것 간 획일성의 결여는 진리 확정자 이론의 또 다른 한계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무엇을 기반하는 것을 결정하려는 그 시도는 자연스럽게 단계적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궁극적 기반에 도달할 때까지, 먼저 문제의 참에 대한 직접 기반을 상대적으로 결정하고, 그러고 나서 그 기반들에 대한 직접 기반을 상대적으로 결정한다 등등. 따라서 가령 우리는 먼저 자연적인 것에서 규범적인 것을 기반하고, 그 뒤에 물리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을 기반하고, 그 뒤에 미시물리적인 것에서 물리적인 것을 기반하고, 그 때문에 규범적인 것이 미시물리적인 것에 기반하는 것을 세운다.

 그러나 진리확정자의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참 이분법은 이러한 단계적 절차에 잘 들어맞지 않게 만든다. 왜냐하면 기반되는 것은 참이고 기반해주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존재인데, 이는 그 자체로 기반되는 올바른 형태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범적인 것에 대한 참은 자연적인 것의 존재에 기반할 것이고, 이는 물리적인 것의 존재에 기반되는 올바른 진리-이론적 형태의 참을 갖지 않는다.

  물론, (1) 사실 q의 존재가 명제 r을 참으로 만들고, (2) 사실 p의 존재가 명제 q를 참으로 만들 때마다, (3) 사실 p의 존재는 명제 r을 참으로 만들 것이다. - 가 제안될 수 있다.

 “연쇄함”의 합법성은 그 때문에 보존된다. 그러나 중간항에서, (1)에 있는 사실 q의 존재에서, (2)에 있는 명제 q의 참으로의 이동을 고려할 때, 왜 이 연쇄 원리가 성립하는가? 아마도, 이것은 오직 q의 참이 사실 q의 존재에 대한 일종의 기반이기 때문일 뿐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 확정 이론의 전체 취지에 반대되고, 이는 (그 반대 방향이 아닌) 명제의 참을 기반하는 사실의 존재를 취한다.

 아마도 진리 확정자 접근에 연쇄의 적법성을 세우는 어떤 다른 더 고유적인 방식이 있다. 그러나 기반이 이미 기반을 갖기에 적합한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대안이 있을 때, 왜 이러한 논쟁을 고려하는가? 진리 확정자 이론가는 부적임자를 억지로 그 일에 맞추는 문제에 직면하는 누군가와 같다. 먼저 부적임자를 만들고, 그 자를 그 일에 맞추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의역)

 진리 확정 관계에 대한 곤경은 단지 관계항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 관계항들은 또한 그 자체로 그 관계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그 관계는 보통 양상 언어에서 설명되기 때문이다: 만약 f의 존재가 p(◻︎(E(f) ⊃ T(p)))의 참을 필연화하면, f는 p에 대한 진리확정자일 것이다. 그러나 종종 지적되듯이 이것은 너무 많이 들여놓는 것이다. 가령 임의의 필연적 참은 무엇이든 지에 기반하고, 단지 소크라테스는 명제 단집합 <소크라테스가 존재한다> 에 대한 진리확정자가 아니라, 사실 단집합 <소크라테스가 존재한다> 는 명제 <소크라테스가 존재한다>에 대한 진리확정자일 것이다. 따라서, 이 관계항의 형식이 너무 제한적으로 진리 확정을 만드는 반면에, 그 관계의 본성은 너무 자유롭다.

 그 관계항에 대한 제약은 그 관계에서 그 결함들에 대해 보상하는 것에 대한 방도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왜냐하면 P가 Q를 필연화 할 때마다, 만약 P가 Q에 대한 진리확정자라면, 모든 참은 사소하게 그 자체로 진리확정자이다. 기반은 존재하는 무언가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기반되는 것은 참인 무언가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사소화를 피한다; 그리고 우리는 심지어 그 관계가 비재귀적이고 반-대칭적임을 보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관계의 우항 좌항에 있는 그 대상은 다른 유형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실체성substantiality에 대한 순전한 망상을 얻는다. 실로, 꽤 그럴듯한 형이상학적 견해에서, 진리 확정 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의 사소화가 존재한다. 가령 우리는 임의의 참 p에 대하여 사실 p가 존재하고 그것은 그 사실 p의 존재에 대한 p의 참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p는 그러면 임의의 참인 명제 p에 대한 진리확정자일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 방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세계는 그러면 임의의 참에 대한 진리확정자이다. 그러나 그러한 무해한 형이상학적 견해는 우리가 모든 참에 대한 진리확정자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합법적으로 간주될 수 없다. 

 진리 확정 개념은 그것이 의도된 과제에 대해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다: 이 개념은 관계가 성립할 수 있어야 하는 관계항을 임의적으로 제약한다; 이것은 진리 확정 연결이 연쇄되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진리확정자를 찾는 것에 대한 프로젝트를 사소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것을 옹호할 때 말해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진리 확정 개념은 의도된 관계에 대한 필요 조건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만약 P가 Q를 진정으로 기반한다면, 사실 P는 명제 Q에 대한 진리 확정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정말로 문제되는가에 대한 의미에 의해 인도되는 동안에 진리확정자를 찾음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기반을 발견해낼 수 있다. 그러나 진리 확정의 관계가 우리가 진짜로 흥미를 갖는 개념의 왜곡된 그림자는 결코 아닌 척하지는 말아야 한다.

1. 사실/비사실 기반 2. 완전/부분 기반 3. 매개/직접 기반 4. 약한/엄밀 기반 5.다양한 엄밀/부분 기반
f(사실 기반): 기반되는 것은 사실적이다. (참문장이어야) 또한 기반해주는 것도 사실적이다.
nf: 기반해주는 것과 기반되는 것이 거짓 문장이거나 가능하게 사실적인 문장이다.


사실 개념[<]에 대하여, (A ^ B)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A,B에 기반될 수 있을 뿐이다. 


비사실 개념[<o]에 대하여, (A ^ B)는 A,B가 거짓이라도, A,B에 기반될 수 있을 뿐이다.


  • ◼︎비사실 개념(nf)으로 사실 개념(f) 정의하기:
(F-N) △ < A iff △ <o A and △. [어떤 문장 △는 다른 문장을 사실적으로 기반한다 iff 그 문장 △이 다른 문장을 비사실적으로 기반하고, 그 문장 △들이 참이다.


◼︎F로 nF 정의하기:
(N-F) △ <o A iff ◇(△<A)


  • ◼︎위 정의에서 나타나는 곤경:
 △가 A를 nf기반한다면, △들은 공동으로 가능해야만 한다는 사실로부터 곤경이 발생한다. 이것은 너무 제한적이다. △가 공동으로 불가능할 때마다, △가 A를 nf 기반하기를 허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면 A는 A가 불가능할 때마다, A를 nf기반하는데, 우리는 그 자신을 기반하는 어떠한 문장도 원하지 않는다. nf기반의 노골적인 설명이 나타내는 곤경은 f기반이 더 근본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완전 기반(F): 이전까지 다뤘던 기반이 완전 기반이다.


부분 기반(P):
A,𝛤 < B where 𝛤는 “다른 참들”의 가능한 공집합이다.”


P 기반은 F 기반을 통해 정의될 수 있다.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A ^ B와 A v B의 부분 기반은 둘다 A,B로 같기 때문이다.


A,B 각각은 A v B의 F 기반이지만, A ^ B에는 F 기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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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분배적/ 비분배적 기반


이전의 “다 대 일” 연결 관계가 아닌, “다 대 다” 연결로 기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 (전건과 후건 모두 어떠한 수의 문장도 포함될 수 있다.)


  1. △<𝛤는 △는 동시에 𝛤의 각 문장들을 기반한다.


그러나 여러 목적을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것이다.


(2) △<𝛤는 △는 분배적으로 𝛤의 각 문장들을 기반한다. 


즉, (△의 부분집합인 △1, △2, … )로의 △의 분해가 있고, (wf 기반인 경우에) △1 < C1, △2 < C2인 그런 (원소 C1, C2)로의 𝛤 분해 (𝛤={C1, C2, C3, …})가 있다.


가령, 심적인 것이 물적인 것을 수반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𝛤을 모든 심리적 참 C1, C2, … 의 집합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물리적 참의 적당한 집합 △에 대하여, △는 𝛤를 분배적으로 기반할 것이다.
매개 기반(M): 이전까지 다뤘던 기반은 매개 기반이다.


직접 기반(I): 매개되는 것으로 간주될 필요가 없는 기반 개념이다.


(예) A,B,C는 A ^ (B^C)를 매개 기반한다. 왜냐하면 B,C는 B^C를 기반하고, 다시 A와 B^C가 A^(B^C)를 기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B,C는 B^C를 직접 기반한다.


“직접 기반은 “매개되지 않는다”라고 하기 보다는 “매개되는 것으로 간주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매개되는 것으로 간주될 필요가 없더라도 사실은 매개되는 직접 기반의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ex) A < A v (A v A). 여기서, A의 참은 우변의 (A v A)을 기반하고, 좌항의 선언지가 A v (A v A)에 매개 기반이 아니기 때문에, A는 A v (A v A)를 직접 기반한다; 그리고 A는 또한 A v (A v A)의 기반에 매개 관계로 있다.


  • ◼︎M기반은 I 기반으로 정의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M 기반의 관계는 I 기반 관계를 적절히 연쇄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I 기반의 각 관계는 M 기반의 퇴보한degenerate 경우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는 A를 I기반>,      <𝛤1,△,𝛤2는 B를 M기반>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𝛤1,△,𝛤2 이 B를 M 기반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M기반으로 I기반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ex), A의 참은 A v (A v A)를 직접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는 (A v A)에 대해, (A v A)은 A v (A v A)에 대해, 직접 기반이면서도, 전술했듯이 이 기반은 또한 매개 기반이다. 우리는 A v (A v A)에 대한 A의 기반이 매개되는 것으로 간주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 생각이 어떻게 매개 기반에서 정의되는가로 전환되는 지는 알기 어렵다.
 s 기반: 이전까지 논의했던 기반은 엄밀 기반이다. 이것은 어떤 참이 그 자신을 기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W 기반: 어떤 참이 그 자신을 기반하는 것을 허용한다. 화법 ‘for - and for - and … is for -‘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후자의 ‘for’은 기반되는 문장을, 전자의 ‘for’은 그 기반을 명시한다) 
(ex). <샛별은 개밥바라기와 동일하다>와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는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이다. (이 경우에, 기반된 참은 어떠한 그 기반도 약하게 기반하지 않는다고 말해질 수 있다.)


 ◼︎ 약한 기반 경우들의 특징: 주어진 참, 그 기반이 설명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다. (ex) <존이 마리와 결혼함>은 <결혼한 커플인 존과 마리의 존재>를 설명하고, 그러면, <마리가 존과 결혼함> 또한 <그 결혼한 커플의 존재>를 설명한다. 또는, 만약 <존이 마리와 결혼함>이 <존이 마리와 결혼함 또는 빌이 수와 결혼함>을 설명한다면, 그러면 <마리가 존과 결혼함> 역시 <존이 마리와 결혼함 또는 빌이 수와 결혼함>을 설명할 것이다.
 ◼︎s 기반은 우리를 설명적 계층의 아래로 이동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참은 결코 그 자신의 s 기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w 기반은 우리를 설명적 계층의 옆길로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기반되는 것”과 같은 수준에 있는 참으로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어떤 주어진 참을 그 자신의 약한 기반으로 허용할 수 있다.
  • ◼︎w기반으로 s기반을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 <s C if (1) △ <w C ^ (2) C는 — 그 자체로 또는 다른 문장과 함께 — △의 임의의 원소 B를 w 기반하지 않는다.
  • ◼︎s기반으로 w기반을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 <w C if (1) △는 C의 설명적 역할을 포함한다; 즉 만약 △,𝛤이 —C,𝛤가 B를 s 기반할 때마다 — B를 s 기반한다.


◼︎ Fine: 약한 기반이 엄밀 기반 보다 더 근본적이다. (우리가 적절한 부분의 개념 보다 적적하거나 부적절한 부분의 개념을 더 근본적으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볼 것이지만, 약한 기반은 더 단순한 의미론을 갖는다. 그리고 기반의 일바나 이론을 발전시킬 때 약한 기반은 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시작점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w기반 개념을 추가시, 엄밀/부분s/p 기반 개념을 더 구분할 수 있다.


Ps기반(*): 만약 P가, 홀로 혹은 다른 참들과 함께, Q에 대한 엄밀 완전 기반이라면, 이러한 의미에서, P는 Q의 부분 기반이다.
wP기반: 만약 P가, 가능하게 다른 참들과, Q에 대해 약한 완전 기반이라면, P는 Q에 대한 wP 기반이다.


sP기반(): 만약 P가 Q에 대해 wP 기반이지만, Q는 P에 대해 wP 기반이 아니라면, P는 Q에 대해 상응하는 sP엄밀한 부분 기반일 것이다.


Ps기반(’): wP 기반과 Ps 기반의 연쇄의 결과다. 만약, 어떤 참 R에 대하여, P가 R에 대한 Ps기반이고 R은 Q에 대한 wP기반이면, P는 Q를 Ps 부분적 엄밀 기반할 것이다.
  • 그럼직한 가정 하에서 쉽게 보여지는 것이 있다. (P ≺* Q) ⊃ (P ≺’ Q) and (P ≺’ Q) ⊃(P ≺ Q). 그러나 이 역은 없다.
  • sP기반은 P기반이 항상 F기반의 부분일 필요가 없는 기반에 대한 자연스러운 부분적 개념을 제공한다. (ex) 우리가 지식 P의 sF 기반을 얻기 위해 P에 추가할 것이 없더라도, P는 P지식에 대한 부분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P와 지식 P는 지식 P를 wF 기반한다는 것이 주어졌다고 해보자. 그러면 지식 P는 아마 P를 wF기반하는 부분도 아니고, 따라서 P는 의도된 의미에서 P 지식을 sP 기반할 것이다.



1.6 기반의 논리 

 기반의 논리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순수 또는 구조적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비순수, 적용 논리이다. 우리는 전자에 대해서만 알아본다.

위 그림에서 F 기반의 문장 내에 △는 임의의 개수의 참 A1, A2, … 을 나타낸다. 

포섭 규칙은 어떻게 완전 기반이 부분 기반이 되고, 엄밀 기반이 약한 기반이 되는지를 가능하게 해준다.

절단 규칙은 기반 문장을 연쇄하게 해준다; 약한 기반의 문장들은 [*연쇄하여 하나의 기반이 된다.] 이행성 규칙은 두 개의 부분 기반 문장을 연쇄하게 해주고, 그것의 결과 문장은 주어진 문장 중 하나가 엄밀한 한에서 엄밀하다. 동일성에 따르면, 우리는 임의의 참이 그 자체로 약한 기반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비순환성에 따르면, 어떤 참도 다른 참에 엄밀 부분 기반이 아니다. 역포섭은, 모든 전건 A1, A2, …이 후건 C의 엄밀 부분 기반인 한에서, 약한 기반의 문장 A1,A2, … ≤ C 에서 상응하는 엄밀 문장 A1, A2, … < C로 가는 것을 허용해준다.

  • 고전 귀결과 기반의 논리의 두드러진 차이들

 (1) 약화의 부재

 △ < C 일지라도, △,A < C는 기반 논리에서 추론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기반은 결론과 연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기반 논리에서 약화가 성립한다면 상기의 비순환성은 유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어도 하나의 기반에 대한 엄밀 문장 △<C는 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화를 고려할 때, ‘△,C < C’는 성립해야 하고, 그러면 C는 C(C≺C)를 sP기반한다 (그러면 비순환성에 위배된다).

 (2) 병합 규칙 Amalgamation Rule

 △1<C △2 < C …

ㅡㅡㅡㅡㅡㅡㅡㅡ

△1△2 , … < C

 * 우리는 엄밀 기반에 대해 병합 규칙을 이끌어낼 수 있다. 즉, 주어진 참에 대한 엄밀 기반은 단일 기반으로 병합 및 결합될 수 있다. 기반의 규칙 중에서 이 규칙을 포함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나는 [병합 규칙]없이 만들 수 있는 기반 논리에 대한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설명은 없다고 의심한다.

 * 우리는 약한 기반에 호소하지 않고서 병합 규칙을 직접 옹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 C와 𝛤 < C인 경우를 고려해보자. 이제, C,C는 C ^ C에 대한 기반이다. 따라서, <에 대한 절단을 적용하자면, △, 𝛤 < C ^ C (즉, △, 𝛤는 C^C를 s 기반한다.) 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떻게 △,𝛤는 C에 대한 엄밀 기반이 되지 못하는가? 기반의 관계에서 무슨 차이가 이러한 구분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가?

 *병합 규칙으로부터 기반된 참에 대한 최대의 은 항상 존재할 것임이 따라 나온다. 즉, 만약 △<A이면, (1)△+ <A 이고, (2) (𝛤<A 때마다) 𝛤≤A+ 인 그런 △+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을 𝛤<A인 모든𝛤의 합집합으로 두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기반된 참 A에 대한 최소의 은 없을 수 있다. 즉, (1) △- < A이고, (2) (𝛤<A 때마다) △- ≤ 𝛤인 △-는 없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A를 (p1 ^ p2 ^ …) v (p2 ^ p3 ^ …) v (p3 ^ p4 ^ …) v …의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각각 k=1,2, …, pk, pk+1, … < A 등에 대하여, 만약 A의 최소 기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비어있어야 한다.

 이 예는 또한 최소성을 통한 유관성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얻을 수 있는 생각을 좌절시킨다. 즉, 약화에 영향을 받는 기반 <+의 개념에서 시작할 때, 우리는 (다음의) 이 정의를 통해 약화에 영향받지 않는 기반 <의 “유관” 개념을 정의하기를 바랄 수 있다:

 △ < C if △ <+ C & △의 어떤 진부분집합 △에 대해서도 △’ <+ C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거기서there 상기의 A=(p1 ^ p2 , …) v (p2 ^ p3 ^ …) v …에 대한 어떠한 유관 개념도 되는 것을 막는다.

1.7 논리의 기반 (도입 규칙)

 “비순수” 기반 논리로 관심을 돌려보자. 여기서의 주요 문제는 진리함수적, 양화적 참에 대한 기반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기반의 논리에 대한 이러한 부분이 논리의 기반에 대한 설명을 구성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전 논리의 도입, 제거 규칙과 느슨하게 상응하면서, 우리가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참에 대해 제공할 수 있는 2 가지 종류의 기반-이론적 규칙이 있다. (1) 첫 번째 규칙은 어떤 것이 특정 형태의 논리적으로 복합적 참을 기반하는 충분 조건을 제공한다. (2) 두 번째 규칙은 그러한 필요조건을 제공한다.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참에 대한 기반은 무엇인가? A&B, A v B, AxFx, ∃xFx, ~A인가? 약한 기반에 대해서도 유사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나는 오직 엄밀 기반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선언, 연언은 다음의 도입 규칙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고 가정된다.

^I. A,B < A^B

vI-L. A<A v B. vI-R. B < A v B

이 방식들은 그것들 한에서 괜찮지만, 선언 규칙이 부적절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왜냐하면 전술했듯이 기반은 병합 규칙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만약 A와 B가 A v B에 대한 분리된 기반이라면, A,B는 A v B에 대한 총체적 기반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vI-L과 vI-R을 더하여, vI+을 보자. 이것은 A,B <A v B를 의미하고, 우리는 이것을 갖는다.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는 연언 규칙에 의하여  A,B가 (A v B) ^ (A v B)에 대한 기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이 사실 때문에 (A v B)의 기반과  (A v B) ^  (A v B)의 기반 간에 불쾌한 구분이 나타나기 때문에, A,B가 A v B에 대한 기반임을 거부하고 싶지 않는가? 

 물론 만약 원래의 규칙이 병합 규칙이 추론될 수 있는 문맥 내에서 말해진다면, 추가적인 규칙은 필요없다. 그러나 이 규칙들이 말해지는 문맥은 보통 이러한 종류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추가적인 규칙이 요구된다.

양화사

I. B(a1), B(a2), … < ∀xB(x)

∃I. B(a) < ∃xB(x)

a1, a2, .. 은 영역의 모든 대상에 대한 이름이고, a는 하나의 그런 대상의 이름이다. 선언 규칙에서 처럼, ∃I에 병합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I. B(a), B(b), … < ∃xB(x)

그러나 ∃I이 가진 또 다른 곤경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B(x)가 x=x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유사한 곤경은 B(x)가 어떤 술어 F에 대해 ~(Fx ^ ~Fx)일 때 나타난다.) 그러면,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소크라테스 (a=a)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참을 기반할 것이고, 따라서 <무언가가 존재함>을 함축할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무언가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다.

 이 곤경에 대한 표준적 해소방안은 ∃xB(x) 기반은 (단지 B(a)가 아니라) a가 존재한다(Ea)는 참과 더불어 B(a)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B(a), E(a) < ∃xB(x). 그러나 이 제안은 종종 <유관 존재 주장 Ea를 존재[주장] ∃x(x=a)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제안>과 결합된다. 하지만 B(x)를 x=a라고 해보자. ∃I의 개정된 버젼에 따르면, a=a, ∃x(x=a)는 (기반의 비순환성과는 다르게) ∃x(x=a)는 ∃x(x-a)를 기반할 것이다.

 우리는 B(a), Ea가 ∃xB(x)를 기반하는 B에 제약을 둠으로써, 이 곤경을 피하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모든 경우에서 논리 상항에 대한 기반의 획일적인 규칙을 갖는 것이 완성될 수 있는, 바람직할 수 있는 어떤 합리적인 방식도 없다고 의심한다. ⋇ 이 제안은 다른 반직관적 귀결들을 갖는다. 왜냐하면, 만약 허용한다면, ∃x(x=a)는 일반적으로 ∃x(Bx)의 부분 기반이고, (a=a는 ∃x(x=a)를 부분 기반하기 때문에) a=a는 일반적으로 ∃xB(x)의 부분 기반이다. 그러나 분명 a=a에 대한 참은 일반적으로 ∃xB(x) 참과 무관하다. — 가령.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인 누군가와 무관하다.

 ◼︎ 존재 주장이 존재적 참의 기반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포기하기 보다, 나는 존재 주장은 존재적 참의 기반과 유관하지만 존재 양화를 통해 그 자체로 이해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존재함>과 <소크라테스인 무언가가 존재함> 사이의 필연적 동치가 있음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기반에 민감하다면, 우리는 (기반의 차이에 의존하는) 동치 문장 간 차이에 민감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A v ~A와 B v ~B는 각각 필연적 참이니까 필연적 동치이지만, 그들의 근거에 대해서는 보통 다르다. 그리고 현재 경우에서도 유사하게 그렇게 생각될 수 있다.

 ◼︎ 우리는 ∃x(x=a)를 기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존재에 대한 유관 개념에 닿을 수 있다. 직관적으로, (단지 유관 사례인) a=a 뿐만 아니라 a에 대한 무언가도 우리가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a의 존재는 — 만약 이것이 ∃x(x=a)의 부분 기반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면 — 그 자체로 ∃x(x=a)로 이해될 수 없다. 실로, 대상의 동일성 자체는 그 대상의 존재에 대한 기반이라고 또는 부분 기반이라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존재를 기반하는 것은 그가 그러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여부에 의존할 수 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조차도 어떻게 <소크라테스의 존재를 기반하는 것>이 소크라테스 그 자신의 동일성에 의존할 수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 [보편 양화사에 대한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

 a1, a2… 를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들이라고 가정해보자. B(x)는 x가 존재하는 개별자 중 하나와 동일한 조건이라고 해보자: x = a1 v x = a2 v … . 그러면 위 ∀I 규칙을 고려할 때 그 참은 다음과 같다.

(a1=a1) v (a1=a2) v (a1=a3) v …, (a2=a1) v (a2=a2) v (a2=a3) v …, (a3=a1) v (a3=a2) v … ∀x(x=a1 v x=a2 v x=a3 v … ) 기반한다. 그리고 a1= a1 (a1=a1) v (a1=a2) v (a1=a3) v … 기반하고, a2=a2  (a2=a1) v (a2=a2) v (a2=a3) v … 기반하고, a3=a3 (a3=a1) v (a3=a2) v … 기반하기 때문에, a1=a1, a2=a2, a3=a3가 ∀x(x=a1 v x=a2 v x=a3 v … ) 기반한다. 그러나 각각의 a1=a1, a2=a2, a3=a3는 필연적이고 따라서 ∀x(x=a1 v x=a2 v x=a3 v … )는 필연적이어야 한다. 즉, a1, 2, … 이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견해에서 볼 때 그렇지 않다.)

 이 곤경은 보통 a1, a2, …가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라는 “총체성totality”주장에 호소함으로써 해소된다. T(a1, a2, …)에 의해 이 참을 지칭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xB(x)의 기반은 단지 B(a1), B(a2), …가 아니라 T(a1, a2, …)와 함께 B(a1), B(a2), …라고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제안은 총체성 주장 T(a1, a2 …)은 그 자체로 보편 주장 ∀x(x=a1 v x=a2 v … )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제안과 짝지어진다. 그러나 B(x)를 (x=a1 v x=a2 v …) 조건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xB(x)의 기반, 즉, ∀x(x=a1 v x=a2 v …)의 기반은 ∀x(x=a1 v x=a2 v …)와 함께 (a1=a1) v (a1=a2) v (a1=a3) v …, (a2=a1) v (a2=a2) v (a2=a3) v …, (a3=a1) v (a3=a2) v … 의 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반의 비순환성과 반대된다.)

 우리는 T(a1, a2, …)에 더하여 B(a1), B(a2), …가 ∀xB(x)를 기반하는 B(x)를 제약함으로써 이 곤경을 피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나는 모든 경우에 이것이 논리 상항에 대한 기반의 획일적 규칙을 갖는 것이 완료될 수 있는, 바람직한 어떤 합리적인 방법도 없다고 의심한다. 이 제안도 다른 반직관적인 귀결을 갖는다. 왜냐하면 총체성 주장 t(a1, a2, …)은 보통 ∀xB(x)의 부분 기반일 것이고, 각 a1=a1, a2=a2, …은 T(a1, a2, …)의 제안된 설명 하에서 T(a1, a2, …)를 부분 기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성 주장 a1=a1, a2=a2, … 은 보통 보편적 참 ∀xB(x)의 부분 기반이다. 그러나 분명히 a=a의 참은 보통 ∀xB(x)의 참과 무관하다 — 가령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니거나 죽는다>는 참과 무관하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T(a1, a2, …)은 모든 보편적 참 ∀xB(x)의 기반의 부분이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보편적 참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x(x=a1 v x=a2, …)와 T(a1, a2, …)가  필연적으로 동치일지라도, 그것들은 그 기반에 대해서 다르다. 그 동일성 a1=a1, a2=a2, …는 ∀x(x=a1 v x=a2 v …)의 기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지만, T(a1, a2, …)의 기반과는 직간접적으로 모두 무관하다.

 내가 일반적인 이론적 기반을 선호하는 위 입장에 대한 변화가 있다. 우리는 a1, a2, …가 기껏해야 존재한다는 약한 의미에서 T(a1, a2, …) 총체성 주장을 고려했지만, 우리는 또한 그것을 a1, a2, …가 존재하는 대상 (∀x(x=a1 v x=a2 v …) ^ Ea1 ^ Ea2 ^ …와 동치인 무언가) 이라는 강한 의미로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적 참 ∃xB(x)의 근거를 어떤 참인 사례와 적당한 총체성 주장으로 구성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보편적이든 존재적이든지 간에, <그 영역 내의 대상들이 그것인 것what they are>은 양화적 참의 근거의 부분일 것이고, 존재 사실의 분리된 범주는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보편적 참의 기반의 문제는 많은 수수께끼들을 야기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옳다면, 일단 우리가 총체성 주장과 보편 주장 간 구분을 한다면, 쉽게 해소되는 그 문제에 대한 순수히 논리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이것은 여전히 총체성 주장에 대한 기반의 문제에 열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학 보다는 형이상학의 측면에 놓인 문제다; 그리고 양화사 또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해져야 하는 방법을 나타낼 수 있는 기반의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이해에서 어떠한 것도 존재한다고 여겨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마침내 부정으로 관심을 돌린다. 어떻게 우리가 A를 통해 ~A의 기반을 말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만약 ~A가 참이면, A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A가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A의 구성요소를 통해 ~A의 기반을 말하는 것이다. 5 가지 경우가 있다.

 

~^I. ~A <~(A ^ B) ~B < ~(A ^ B)

~vI. ~A,~B < ~(A v B)

~~I. A < ~~A

~∀I. ~Fa1, Ea < ~∀xFx

~∃I. ~Fa1, ~Fa2, …, T(a1, a2, …) < ~∃xFx.

 

 이 규칙들을 고려할 때, 부정에 대한 기반들은 내부를 향해 우리가 원자적 참과 그것의 부정에 도달할 때까지 나아갈 수 있다.

1.8 논리의 기반 (제거 규칙)

 우리는 이제까지 더 단순한 참에 의해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참이 기반되는 충분 조건을 제공했다. 우리는 이제 논리적으로 복합적 참이 기반될 필요 조건에 대한 무언가를 알고자 한다. 가령  A와 B의 참들이 A ^ B를 기반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언제 일반적으로 △ 참의 임의의 집합은 A ^ B를 기반하는가? 우리가 말했던 모든 것에 대하여, 참에 대한 어떠한 집합도 A ^ B를 기반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그러한 불쾌한 가능성이 배제된다면, 더한 무언가가 그 문제에서 말해져야 한다.

 이 더 나아간 문제는, 내 지식 안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되어져 왔다; 필연적 조건의 적절한 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문제되는 것이 주어진 참에 대한 엄밀 기반일 때 조차도, 기반의 약한 개념 (≤)에 호소해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기반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발전시킬 때, 약한 개념의 호소가 중요하다는critical 또 다른 경우이다.

 다시 △ 참의 집합이 A ^ B의 기반인 경우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A ^ B의 임의의 참이 A와 B를 통해 매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연언지는 소위 참에서 연언으로 흘러가야 하는 도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가 — 각각 A와 B를 엄밀 기반하는 — △1,△2 두 부분으로 나눠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A와 B는 A ^ B를 기반하고, 따라서 △={A,B}일 때, <△의 A와 B의 엄밀 기반으로의 요구된 분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 △1,△2 두 부분으로 나눠져야 한다거나, {A,B}와 동일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동일한 곤경은 △가 A와 B의 기반-이론적 동치 A’, B’로 구성될 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대신에 말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만약 △가 A^B의 sF기반이라면, △가 △1,△2 로의 어떤 분리에 대하여, △1,△2은 —엄밀 기반 개념의 오른쪽에 약한 기반 개념을 사용할 때— A와 B 각각에 대한 wF기반이다. ( △1 ≤ A and △2 ≤ B). 그 후건을 표현할 대안적인 방식은, 분배 기반을 고려할 때, △는 {A,B}의 약한 분배 기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 𝛤에 대한 약한 분배 기반임을 나타내기 위해 △≤𝛤를 사용해보자. ^에 대한 그 제거규칙은 

 

^E. △<A^B

         ㅡㅡㅡㅡㅡㅡ

△ ≤{A,B} 형태를 갖는다.

 

 선언에 대해 상응하는 규칙이 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언 A v B의 기반은 그 선언지를 통해 매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언에 대한 기반이 엄밀할 때, 우리는 선언지에 대한 기반을 약해지게 허용해야 한다. 병합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선언에 대한 기반이 그 선언지의 분배적 기반일 수 있음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의 원리로 인도된다.

 만약 △가 A v B의 sF기반이면, △는 A의 wF기반이거나 B의 wF기반 이거나, A와 B의 wd 기반이다. 또는 더 형식적으로 표현하자면,

 

 vE. △<A v B

  ㅡㅡㅡㅡㅡ

△≤A; △≤B; △≤ {A, B}

 

 보편 양화사에 대하여,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 집합이 —만약 그것이 총체성 주장과 모든 그것의 참인 사례를 분배 기반한다면—  ∀xB(x)의 sF 기반일 것이다. 즉,

 

 ∀E. △ < ∀xB(x)

ㅡㅡㅡㅡㅡㅡ

△≤{T(a1,a2, …), B(a1), B(a2), …} 여기서 a1,a2,…은 전과 동일하게 영역 내의 모든 개별자들이다.

 존재 양화사에 대하여,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 집합은 —그것이 총체성 주장과 그것의 참인 사례 중 일부를 분배 기반한다면—  ∃xB(x)의 sF 기반일 것이다. 즉,

 

 ∃E. △<∃xB(x)

ㅡㅡㅡㅡㅡ

△≤{T(a1,a2, …), B(a11), B(a12), …}; △≤{T(a1,a2, …), B(a21), B(a22), …}; …

 

 여기서 ak1, ak2, …는 B(a)가 참인 a의 비공허 부분집합들이다.

 

 

 

 다른 종류의 부정 문장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의 제거 규칙을 가질 수 있다.

도입과 제거 규칙 둘다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쌍조건문의 추론적 상대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좌측의 논리적 복합 참의 엄밀 기반>을 <우측의 더 단순한 구성요소들의 약한 기반>과 연관시킨다.

E 규칙 내의 △가 “단순한”  참에 국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원자 술어 F에 대해. Fa1a2, … an 또는 ~Fa1a2, …, an 형태를 가졌거나, Ea 또는 T(a1, a2, …) 형태를 가진 것] 그러면, 약한 기반에 대한 도입과 제거 규칙을 사용함으로써, <왼쪽의 엄밀 기반 주장>은 <약한 기반 주장>으로 대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단순한 참>이 <복합 참의 약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합적 참의 엄밀 기반이 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IE의 자리에서, 우리는 ^IE*를 갖는다.

 

 ^IE*. △≤A ^ B iff △1 ∪ △2 =△이고, △1 ≤ A와 △2 ≤ B인 그러한 △1, △2 가 존재한다. 이 재정식화는 그것의 재귀적 성격 때문에 중요하다: <(단순 참을 통한) 복합적 참의 약한 기반함>은 성공적으로 <더 단순한 참의 약한 기반함>으로 환원될 것이다.

 위 설명에 하나의 공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개의 참이 기반-이론적 동치일 때에 대해 더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두 개의 매우 그럴듯한 원리는 알파벳 변화과 관련된다:

 

 ∀xB(x) ≤ ∀yB(y) ∃xB(x) ≤ ∃yB(y).

 

양화적 참에 대한 기반-이론적 수입import은 벼수의 변화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다. 어떤 다른 원리도 채택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A ^ B ≤ B ^ A, 또는 A ^ (B ^ C) ≤ (A ^ B) ^ C. 그러나 우리가 다른 규칙과 양립하게 그런 원리를 놓을 때 우리가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리는 A ^ A ≤ A를 채택할 수 없다.

 

1.9 람다-추상화

 ⋋-추상은 2 가지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열린 문장 A(x) (x는 미혼이고 x는 사람인 그런 x)을 고려할 때, 우리는 ⋋를 사용할 수 있다. 술어표현 ⋋xA(x) 시에, ‘⋋x’로, 속성표현 ^xA(x) 시에, ‘^x’로 표현하자.

 결과적인 표현인 구문론적으로 다르다. 전자의 것은 술어 위치를 차지하는 표현인 반면에, 후자의 것은 이름nominal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의미론적으로도 다르다; 전자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말할 수 있게 해주면서, 기술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에, 후자는 기술된 사물을 고를 수 있게 해주면서, 지시적인 역할을 한다. 

 단항monadic 술어 표현 P(현명함)과 이름 표현 t (‘소크라테스’)를 고려할 때, t에 대한 P의 술어화의 결과에 대해 P(t)를 사용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속성 용어 와 이름 표현 t를 고려할 때, ∏[t]를, t에 의해 지시된 대상을 에 의해 지시된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데 사용한다고 해보자. 자연스러운 견해는 [t] 자체는 t와 의 ‘has’ 술어 H의 술어화에 대한 H(t,) 결과이다.

 

 

 

 

 

 

 

 

 

  

 

 

 

 

 

 

 

 

 

 

 

 

 

 

 

 

 

 

 

 

 

 

 

 

 

 

 

 

 

 

 

 

 

 

 

 

 

절단 규칙은 기반 문장을 연쇄하게 해준다; 약한 기반의 문장들은 [*연쇄하여 하나의 기반이 된다.] 이행성 규칙은 두 개의 부분 기반 문장을 연쇄하게 해주고, 그것의 결과 문장은 주어진 문장 중 하나가 엄밀한 한에서 엄밀하다. 동일성에 따르면, 우리는 임의의 참이 그 자체로 약한 기반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비순환성에 따르면, 어떤 참도 다른 참에 엄밀 부분 기반이 아니다. 역포섭은, 모든 전건 A1, A2, …이 후건 C의 엄밀 부분 기반인 한에서, 약한 기반의 문장 A1,A2, … ≤ C 에서 상응하는 엄밀 문장 A1, A2, … < C로 가는 것을 허용해준다.

 

  • 고전 귀결과 기반의 논리의 두드러진 차이들

 

 (1) 약화의 부재

 

 △ < C 일지라도, △,A < C는 기반 논리에서 추론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기반은 결론과 연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기반 논리에서 약화가 성립한다면 상기의 비순환성은 유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어도 하나의 기반에 대한 엄밀 문장 △<C는 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화를 고려할 때, ‘△,C < C’는 성립해야 하고, 그러면 C는 C(C≺C)를 sP기반한다 (그러면 비순환성에 위배된다).

 

 (2) 병합 규칙 Amalgamation Rule

 

 △1<C △2 < C …

ㅡㅡㅡㅡㅡㅡㅡㅡ

△1△2 , … < C

 

 * 우리는 엄밀 기반에 대해 병합 규칙을 이끌어낼 수 있다. 즉, 주어진 참에 대한 엄밀 기반은 단일 기반으로 병합 및 결합될 수 있다. 기반의 규칙 중에서 이 규칙을 포함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나는 [병합 규칙]없이 만들 수 있는 기반 논리에 대한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설명은 없다고 의심한다.

 

 * 우리는 약한 기반에 호소하지 않고서 병합 규칙을 직접 옹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 C와 𝛤 < C인 경우를 고려해보자. 이제, C,C는 C ^ C에 대한 기반이다. 따라서, <에 대한 절단을 적용하자면, △, 𝛤 < C ^ C (즉, △, 𝛤는 C^C를 s 기반한다.) 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떻게 △,𝛤는 C에 대한 엄밀 기반이 되지 못하는가? 기반의 관계에서 무슨 차이가 이러한 구분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가?

 

 *병합 규칙으로부터 기반된 참에 대한 최대의 은 항상 존재할 것임이 따라 나온다. 즉, 만약 △<A이면, (1)△+ <A 이고, (2) (𝛤<A 때마다) 𝛤≤A+ 인 그런 △+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을 𝛤<A인 모든𝛤의 합집합으로 두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기반된 참 A에 대한 최소의 은 없을 수 있다. 즉, (1) △- < A이고, (2) (𝛤<A 때마다) △- ≤ 𝛤인 △-는 없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A를 (p1 ^ p2 ^ …) v (p2 ^ p3 ^ …) v (p3 ^ p4 ^ …) v …의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각각 k=1,2, …, pk, pk+1, … < A 등에 대하여, 만약 A의 최소 기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비어있어야 한다.

 이 예는 또한 최소성을 통한 유관성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얻을 수 있는 생각을 좌절시킨다. 즉, 약화에 영향을 받는 기반 <+의 개념에서 시작할 때, 우리는 (다음의) 이 정의를 통해 약화에 영향받지 않는 기반 <의 “유관” 개념을 정의하기를 바랄 수 있다:

 

 △ < C if △ <+ C & △의 어떤 진부분집합 △에 대해서도 △’ <+ C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거기서there 상기의 A=(p1 ^ p2 , …) v (p2 ^ p3 ^ …) v …에 대한 어떠한 유관 개념도 되는 것을 막는다.

 

1.7 논리의 기반 (도입 규칙)

 

 “비순수” 기반 논리로 관심을 돌려보자. 여기서의 주요 문제는 진리함수적, 양화적 참에 대한 기반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기반의 논리에 대한 이러한 부분이 논리의 기반에 대한 설명을 구성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전 논리의 도입, 제거 규칙과 느슨하게 상응하면서, 우리가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참에 대해 제공할 수 있는 2 가지 종류의 기반-이론적 규칙이 있다. (1) 첫 번째 규칙은 어떤 것이 특정 형태의 논리적으로 복합적 참을 기반하는 충분 조건을 제공한다. (2) 두 번째 규칙은 그러한 필요조건을 제공한다.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참에 대한 기반은 무엇인가? A&B, A v B, AxFx, ∃xFx, ~A인가? 약한 기반에 대해서도 유사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나는 오직 엄밀 기반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선언, 연언은 다음의 도입 규칙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고 가정된다.

 

^I. A,B < A^B

vI-L. A<A v B. vI-R. B < A v B

 

이 방식들은 그것들 한에서 괜찮지만, 선언 규칙이 부적절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왜냐하면 전술했듯이 기반은 병합 규칙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만약 A와 B가 A v B에 대한 분리된 기반이라면, A,B는 A v B에 대한 총체적 기반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vI-L과 vI-R을 더하여, vI+을 보자. 이것은 A,B <A v B를 의미하고, 우리는 이것을 갖는다.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는 연언 규칙에 의하여  A,B가 (A v B) ^ (A v B)에 대한 기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이 사실 때문에 (A v B)의 기반과  (A v B) ^  (A v B)의 기반 간에 불쾌한 구분이 나타나기 때문에, A,B가 A v B에 대한 기반임을 거부하고 싶지 않는가? 

 물론 만약 원래의 규칙이 병합 규칙이 추론될 수 있는 문맥 내에서 말해진다면, 추가적인 규칙은 필요없다. 그러나 이 규칙들이 말해지는 문맥은 보통 이러한 종류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추가적인 규칙이 요구된다.

 

양화사.

 

I. B(a1), B(a2), … < ∀xB(x)

∃I. B(a) < ∃xB(x)

a1, a2, .. 은 영역의 모든 대상에 대한 이름이고, a는 하나의 그런 대상의 이름이다. 선언 규칙에서 처럼, ∃I에 병합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I. B(a), B(b), … < ∃xB(x)

그러나 ∃I이 가진 또 다른 곤경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B(x)가 x=x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유사한 곤경은 B(x)가 어떤 술어 F에 대해 ~(Fx ^ ~Fx)일 때 나타난다.) 그러면,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소크라테스 (a=a)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참을 기반할 것이고, 따라서 <무언가가 존재함>을 함축할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무언가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다.

 이 곤경에 대한 표준적 해소방안은 ∃xB(x) 기반은 (단지 B(a)가 아니라) a가 존재한다(Ea)는 참과 더불어 B(a)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B(a), E(a) < ∃xB(x). 그러나 이 제안은 종종 <유관 존재 주장 Ea를 존재[주장] ∃x(x=a)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제안>과 결합된다. 하지만 B(x)를 x=a라고 해보자. ∃I의 개정된 버젼에 따르면, a=a, ∃x(x=a)는 (기반의 비순환성과는 다르게) ∃x(x=a)는 ∃x(x-a)를 기반할 것이다.

 우리는 B(a), Ea가 ∃xB(x)를 기반하는 B에 제약을 둠으로써, 이 곤경을 피하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모든 경우에서 논리 상항에 대한 기반의 획일적인 규칙을 갖는 것이 완성될 수 있는, 바람직할 수 있는 어떤 합리적인 방식도 없다고 의심한다. ⋇ 이 제안은 다른 반직관적 귀결들을 갖는다. 왜냐하면, 만약 허용한다면, ∃x(x=a)는 일반적으로 ∃x(Bx)의 부분 기반이고, (a=a는 ∃x(x=a)를 부분 기반하기 때문에) a=a는 일반적으로 ∃xB(x)의 부분 기반이다. 그러나 분명 a=a에 대한 참은 일반적으로 ∃xB(x) 참과 무관하다. — 가령.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인 누군가와 무관하다.

 

 ◼︎ 존재 주장이 존재적 참의 기반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포기하기 보다, 나는 존재 주장은 존재적 참의 기반과 유관하지만 존재 양화를 통해 그 자체로 이해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존재함>과 <소크라테스인 무언가가 존재함> 사이의 필연적 동치가 있음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기반에 민감하다면, 우리는 (기반의 차이에 의존하는) 동치 문장 간 차이에 민감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A v ~A와 B v ~B는 각각 필연적 참이니까 필연적 동치이지만, 그들의 근거에 대해서는 보통 다르다. 그리고 현재 경우에서도 유사하게 그렇게 생각될 수 있다.

 

 ◼︎ 우리는 ∃x(x=a)를 기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존재에 대한 유관 개념에 닿을 수 있다. 직관적으로, (단지 유관 사례인) a=a 뿐만 아니라 a에 대한 무언가도 우리가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a의 존재는 — 만약 이것이 ∃x(x=a)의 부분 기반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면 — 그 자체로 ∃x(x=a)로 이해될 수 없다. 실로, 대상의 동일성 자체는 그 대상의 존재에 대한 기반이라고 또는 부분 기반이라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존재를 기반하는 것은 그가 그러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여부에 의존할 수 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조차도 어떻게 <소크라테스의 존재를 기반하는 것>이 소크라테스 그 자신의 동일성에 의존할 수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 [보편 양화사에 대한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

 

 a1, a2… 를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들이라고 가정해보자. B(x)는 x가 존재하는 개별자 중 하나와 동일한 조건이라고 해보자: x = a1 v x = a2 v … . 그러면 위 ∀I 규칙을 고려할 때 그 참은 다음과 같다.

(a1=a1) v (a1=a2) v (a1=a3) v …, (a2=a1) v (a2=a2) v (a2=a3) v …, (a3=a1) v (a3=a2) v … ∀x(x=a1 v x=a2 v x=a3 v … ) 기반한다. 그리고 a1= a1 (a1=a1) v (a1=a2) v (a1=a3) v … 기반하고, a2=a2  (a2=a1) v (a2=a2) v (a2=a3) v … 기반하고, a3=a3 (a3=a1) v (a3=a2) v … 기반하기 때문에, a1=a1, a2=a2, a3=a3가 ∀x(x=a1 v x=a2 v x=a3 v … ) 기반한다. 그러나 각각의 a1=a1, a2=a2, a3=a3는 필연적이고 따라서 ∀x(x=a1 v x=a2 v x=a3 v … )는 필연적이어야 한다. 즉, a1, 2, … 이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견해에서 볼 때 그렇지 않다.)

 이 곤경은 보통 a1, a2, …가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라는 “총체성totality”주장에 호소함으로써 해소된다. T(a1, a2, …)에 의해 이 참을 지칭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xB(x)의 기반은 단지 B(a1), B(a2), …가 아니라 T(a1, a2, …)와 함께 B(a1), B(a2), …라고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제안은 총체성 주장 T(a1, a2 …)은 그 자체로 보편 주장 ∀x(x=a1 v x=a2 v … )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제안과 짝지어진다. 그러나 B(x)를 (x=a1 v x=a2 v …) 조건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xB(x)의 기반, 즉, ∀x(x=a1 v x=a2 v …)의 기반은 ∀x(x=a1 v x=a2 v …)와 함께 (a1=a1) v (a1=a2) v (a1=a3) v …, (a2=a1) v (a2=a2) v (a2=a3) v …, (a3=a1) v (a3=a2) v … 의 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반의 비순환성과 반대된다.)

 우리는 T(a1, a2, …)에 더하여 B(a1), B(a2), …가 ∀xB(x)를 기반하는 B(x)를 제약함으로써 이 곤경을 피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나는 모든 경우에 이것이 논리 상항에 대한 기반의 획일적 규칙을 갖는 것이 완료될 수 있는, 바람직한 어떤 합리적인 방법도 없다고 의심한다. 이 제안도 다른 반직관적인 귀결을 갖는다. 왜냐하면 총체성 주장 t(a1, a2, …)은 보통 ∀xB(x)의 부분 기반일 것이고, 각 a1=a1, a2=a2, …은 T(a1, a2, …)의 제안된 설명 하에서 T(a1, a2, …)를 부분 기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성 주장 a1=a1, a2=a2, … 은 보통 보편적 참 ∀xB(x)의 부분 기반이다. 그러나 분명히 a=a의 참은 보통 ∀xB(x)의 참과 무관하다 — 가령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니거나 죽는다>는 참과 무관하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T(a1, a2, …)은 모든 보편적 참 ∀xB(x)의 기반의 부분이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보편적 참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x(x=a1 v x=a2, …)와 T(a1, a2, …)가  필연적으로 동치일지라도, 그것들은 그 기반에 대해서 다르다. 그 동일성 a1=a1, a2=a2, …는 ∀x(x=a1 v x=a2 v …)의 기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지만, T(a1, a2, …)의 기반과는 직간접적으로 모두 무관하다.

 내가 일반적인 이론적 기반을 선호하는 위 입장에 대한 변화가 있다. 우리는 a1, a2, …가 기껏해야 존재한다는 약한 의미에서 T(a1, a2, …) 총체성 주장을 고려했지만, 우리는 또한 그것을 a1, a2, …가 존재하는 대상 (∀x(x=a1 v x=a2 v …) ^ Ea1 ^ Ea2 ^ …와 동치인 무언가) 이라는 강한 의미로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적 참 ∃xB(x)의 근거를 어떤 참인 사례와 적당한 총체성 주장으로 구성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보편적이든 존재적이든지 간에, <그 영역 내의 대상들이 그것인 것what they are>은 양화적 참의 근거의 부분일 것이고, 존재 사실의 분리된 범주는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보편적 참의 기반의 문제는 많은 수수께끼들을 야기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옳다면, 일단 우리가 총체성 주장과 보편 주장 간 구분을 한다면, 쉽게 해소되는 그 문제에 대한 순수히 논리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이것은 여전히 총체성 주장에 대한 기반의 문제에 열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학 보다는 형이상학의 측면에 놓인 문제다; 그리고 양화사 또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해져야 하는 방법을 나타낼 수 있는 기반의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이해에서 어떠한 것도 존재한다고 여겨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마침내 부정으로 관심을 돌린다. 어떻게 우리가 A를 통해 ~A의 기반을 말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만약 ~A가 참이면, A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A가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A의 구성요소를 통해 ~A의 기반을 말하는 것이다. 5 가지 경우가 있다.

 

~^I. ~A <~(A ^ B) ~B < ~(A ^ B)

~vI. ~A,~B < ~(A v B)

~~I. A < ~~A

~∀I. ~Fa1, Ea < ~∀xFx

~∃I. ~Fa1, ~Fa2, …, T(a1, a2, …) < ~∃xFx.

 

 이 규칙들을 고려할 때, 부정에 대한 기반들은 내부를 향해 우리가 원자적 참과 그것의 부정에 도달할 때까지 나아갈 수 있다.

 

1.8 논리의 기반 (제거 규칙)

 

 우리는 이제까지 더 단순한 참에 의해 논리적으로 복합적인 참이 기반되는 충분 조건을 제공했다. 우리는 이제 논리적으로 복합적 참이 기반될 필요 조건에 대한 무언가를 알고자 한다. 가령  A와 B의 참들이 A ^ B를 기반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언제 일반적으로 △ 참의 임의의 집합은 A ^ B를 기반하는가? 우리가 말했던 모든 것에 대하여, 참에 대한 어떠한 집합도 A ^ B를 기반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그러한 불쾌한 가능성이 배제된다면, 더한 무언가가 그 문제에서 말해져야 한다.

 이 더 나아간 문제는, 내 지식 안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되어져 왔다; 필연적 조건의 적절한 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문제되는 것이 주어진 참에 대한 엄밀 기반일 때 조차도, 기반의 약한 개념 (≤)에 호소해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기반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발전시킬 때, 약한 개념의 호소가 중요하다는critical 또 다른 경우이다.

 다시 △ 참의 집합이 A ^ B의 기반인 경우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A ^ B의 임의의 참이 A와 B를 통해 매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연언지는 소위 참에서 연언으로 흘러가야 하는 도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가 — 각각 A와 B를 엄밀 기반하는 — △1,△2 두 부분으로 나눠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A와 B는 A ^ B를 기반하고, 따라서 △={A,B}일 때, <△의 A와 B의 엄밀 기반으로의 요구된 분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 △1,△2 두 부분으로 나눠져야 한다거나, {A,B}와 동일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동일한 곤경은 △가 A와 B의 기반-이론적 동치 A’, B’로 구성될 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대신에 말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만약 △가 A^B의 sF기반이라면, △가 △1,△2 로의 어떤 분리에 대하여, △1,△2은 —엄밀 기반 개념의 오른쪽에 약한 기반 개념을 사용할 때— A와 B 각각에 대한 wF기반이다. ( △1 ≤ A and △2 ≤ B). 그 후건을 표현할 대안적인 방식은, 분배 기반을 고려할 때, △는 {A,B}의 약한 분배 기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 𝛤에 대한 약한 분배 기반임을 나타내기 위해 △≤𝛤를 사용해보자. ^에 대한 그 제거규칙은 

 

^E. △<A^B

         ㅡㅡㅡㅡㅡㅡ

△ ≤{A,B} 형태를 갖는다.

 

 선언에 대해 상응하는 규칙이 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언 A v B의 기반은 그 선언지를 통해 매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언에 대한 기반이 엄밀할 때, 우리는 선언지에 대한 기반을 약해지게 허용해야 한다. 병합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선언에 대한 기반이 그 선언지의 분배적 기반일 수 있음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의 원리로 인도된다.

 만약 △가 A v B의 sF기반이면, △는 A의 wF기반이거나 B의 wF기반 이거나, A와 B의 wd 기반이다. 또는 더 형식적으로 표현하자면,

 

 vE. △<A v B

  ㅡㅡㅡㅡㅡ

△≤A; △≤B; △≤ {A, B}

 

 보편 양화사에 대하여,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 집합이 —만약 그것이 총체성 주장과 모든 그것의 참인 사례를 분배 기반한다면—  ∀xB(x)의 sF 기반일 것이다. 즉,

 

 ∀E. △ < ∀xB(x)

ㅡㅡㅡㅡㅡㅡ

△≤{T(a1,a2, …), B(a1), B(a2), …} 여기서 a1,a2,…은 전과 동일하게 영역 내의 모든 개별자들이다.

 존재 양화사에 대하여,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 집합은 —그것이 총체성 주장과 그것의 참인 사례 중 일부를 분배 기반한다면—  ∃xB(x)의 sF 기반일 것이다. 즉,

 

 ∃E. △<∃xB(x)

ㅡㅡㅡㅡㅡ

△≤{T(a1,a2, …), B(a11), B(a12), …}; △≤{T(a1,a2, …), B(a21), B(a22), …}; …

 

 여기서 ak1, ak2, …는 B(a)가 참인 a의 비공허 부분집합들이다.

 

 

 

 다른 종류의 부정 문장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의 제거 규칙을 가질 수 있다.

 

 

 

 

 

 

 

 

 

 

 

 

 

 

 

 

 

 

 

 

 

 

 

 

 

 

 

 도입과 제거 규칙 둘다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쌍조건문의 추론적 상대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좌측의 논리적 복합 참의 엄밀 기반>을 <우측의 더 단순한 구성요소들의 약한 기반>과 연관시킨다. (뒷장으로)

 

 

 

 

 

 

 

 

 

 

 

 

 

 

 

 

 

 

 

 

 

 

 

IE 규칙 내의 △가 “단순한”  참에 국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원자 술어 F에 대해. Fa1a2, … an 또는 ~Fa1a2, …, an 형태를 가졌거나, Ea 또는 T(a1, a2, …) 형태를 가진 것] 그러면, 약한 기반에 대한 도입과 제거 규칙을 사용함으로써, <왼쪽의 엄밀 기반 주장>은 <약한 기반 주장>으로 대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단순한 참>이 <복합 참의 약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합적 참의 엄밀 기반이 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IE의 자리에서, 우리는 ^IE*를 갖는다.

 

 

 

 

 

 

 

 

^IE*. △≤A ^ B iff △1 ∪ △2 =△이고, △1 ≤ A와 △2 ≤ B인 그러한 △1, △2 가 존재한다. 이 재정식화는 그것의 재귀적 성격 때문에 중요하다: <(단순 참을 통한) 복합적 참의 약한 기반함>은 성공적으로 <더 단순한 참의 약한 기반함>으로 환원될 것이다.

 위 설명에 하나의 공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개의 참이 기반-이론적 동치일 때에 대해 더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두 개의 매우 그럴듯한 원리는 알파벳 변화과 관련된다:

 

 ∀xB(x) ≤ ∀yB(y) ∃xB(x) ≤ ∃yB(y).

 

양화적 참에 대한 기반-이론적 수입import은 벼수의 변화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다. 어떤 다른 원리도 채택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A ^ B ≤ B ^ A, 또는 A ^ (B ^ C) ≤ (A ^ B) ^ C. 그러나 우리가 다른 규칙과 양립하게 그런 원리를 놓을 때 우리가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리는 A ^ A ≤ A를 채택할 수 없다.

 

1.9 람다-추상

 

 ⋋-추상은 2 가지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열린 문장 A(x) (x는 미혼이고 x는 사람인 그런 x)을 고려할 때, 우리는 ⋋를 사용할 수 있다. 술어표현 ⋋xA(x) 시에, ‘⋋x’로, 속성표현 ^xA(x) 시에, ‘^x’로 표현하자.

 결과적인 표현인 구문론적으로 다르다. 전자의 것은 술어 위치를 차지하는 표현인 반면에, 후자의 것은 이름nominal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의미론적으로도 다르다; 전자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말할 수 있게 해주면서, 기술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에, 후자는 기술된 사물을 고를 수 있게 해주면서, 지시적인 역할을 한다. 

 단항monadic 술어 표현 P(현명함)과 이름 표현 t (‘소크라테스’)를 고려할 때, t에 대한 P의 술어화의 결과에 대해 P(t)를 사용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속성 용어 와 이름 표현 t를 고려할 때, ∏[t]를, t에 의해 지시된 대상을 에 의해 지시된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데 사용한다고 해보자. 자연스러운 견해는 [t] 자체는 t와 의 ‘has’ 술어 H의 술어화에 대한 H(t,) 결과이다.